정부, 연금개혁 '천명'...방향은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 '목표'
전문가들, "국민·기초·퇴직연금 역할·관계 합의부터 추진돼야"

윤석열 정부가 연금개혁에 칼을 빼들었다.

국민연금법에는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재정을 계산하고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했지만 지난 정부들이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연금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탓에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드는 국면에서 연금재정 안정화와 보장성 문제가 서로 상충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으며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과 특수직역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의 형평성 문제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연금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 5월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지속가능한 복지제도를 구현하고 빈틈없는 사회안정망을 제공하려면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7월22일 장·차관 워크숍에서는 "연금개혁 등 과제는 국민이 우리 정부에게 명령한 사항"이라며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과 공정성 제고 및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목표로 한 ‘상생의 연금 개혁’을 내세웠는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주로 기초연금 인상과 국민연금의 부담·급여체계 개선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 출범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연금 간 재정통합 등 ‘구조개혁’을 맡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금 개혁이 단순한 모수 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이나 일방적인 재정통합 등으로 추진돼서는 연금의 궁극적 목표인 ‘노후소득보장’을 제대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모수 개혁에 매몰되지 않고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의 장기적 형태는 무엇인지,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과의 형평성 문제 해소방안을 무엇인지 등을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뿐 만 아니라 연금개혁은 직역·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사안이어서 풀어야 할 실타래가 산더미다.

이에 본지는 연금개혁과 관련해 국민·기초·퇴직연금의 역할 정립 및 특수직역연금의 나아갈 방향 등에 고찰해 보기로 한다.

싣는 순서 ①국민·기초·퇴직연금의 역할 정립 ②특수직역연금의 나아갈 방향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골목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줍고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골목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줍고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국민연금 저부담·고급여 체계, 기금 고갈 앞당길 것

2020년 기준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로, OECD 회원국의 공적연금 평균 18.2%의 절반에 불과한 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38%(40년 가입 기준)로 OECD 회원국 공적연금 평균 42.2%의 90% 수준이다.

현 제도와 기금운용 방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가정 아래 초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저부담·고급여 체계는 분명 기금 고갈을 앞당기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국민연금 기금 적립액은 882조7000만원으로 지난 해 말 948조1000억원에 비해 13%나 감소했다.

공단 측은 이같은 적립금 감소 이유를 광범위한 물가 상승에 미 연준이 공격적인 통화 긴축에 나섰고,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문제가 심화하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투자심리를 악화시켰으며 기금이 보유한 주식·채권 수익률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상황이 언제 호전될지 전문가들도 쉽게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다 국민연금 지급액도 해마다 늘고 있어 국민연금 재정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기금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5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연금 급여 지급 예정액은 총 30조6085억원이다. 2005년 3조5849억원에 그쳤던 연금급여액은 2018년 20조7527억원으로 20조원대에 접어들었고 2020년 25조6541억원, 지난해 29조1368억원이 지급됐다.

국민연금 수급자수는 2005년 165만1681명에서 2020년 538만8022명으로 5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604만9808명에 달해 600만명을 돌파했다.

기초연금, 국민연금과 일원화·퇴직연금, 노후소득보장제도로 강화 등 고려   

어르신들이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줄을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르신들이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줄을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연금개혁 방향을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며 노인빈곤 해소 역시 중요한 과제이므로 ‘재정’과 ‘보장’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현재의 연금개혁 논의에 있어 199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와는 달리 퇴직연금(2005년 도입)과 기초연금(2007년) 등의 역할 정립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은 “연금 개혁은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문제 뿐 아니라 연금제도 재구조화까지 나아가는 더 큰 틀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제도들의 관계와 역할, 각 제도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만을 놓고 ‘적정 보험료’와 ‘적정 급여’를 설정하는 것은 연금개혁 논의에서 아무 의미가 없으며, 기초·국민·퇴직연금의 역할을 명확히 한 상태에서 종합적 차원에서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준이 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우선적으로 기초·퇴직연금이 중장기적으로 어떤 제도여야 하는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초연금은 2008년 기초노령연금으로 도입된 무기여 연금으로서, 소득하위 노인 70%에게 당시 5%의 소득대체율(월 8만원)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됐다. 현재는 금액이 월 3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정 교수는 “기초연금은 노인빈곤이 급증한 도입 당시 상황에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해 보호 받지 못하는 다수의 노인들에게 무기여연금을 제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기초연금이 노인의 70%에 지급하는 기준 또한 근거가 부족하여 논란이 되고 있으며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계 감액규정 역시 모순적이고 불합리하다”며 “한국의 인구고령화 추세를 볼 때 향후 재정부담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 교수는 “기초노령연금의 도입 목적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했던 당시 빈곤 노인을 위한 제도였는데, 국민연금이 성숙해 경제활동 시기에 충분히 가입할 기회가 있었던 세대들에게까지 수당 형태로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한지 못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1998년에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시작된 국민연금은 1999년에 도시지역 거주자까지 확대되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로 성장했다. 현재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가입자가 경제활동인구의 90%를 상회하고 있다.

그는 “일정 시점 이후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일원화하고 기초연금 재정지원을 국민연금 지원으로 전환하여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개편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정 교수는 “퇴직연금의 경우 근로자들이 국민연금 보험료율(9%)에 육박하는 8.3% 이상의 보험료율을 퇴직연금으로 납부하고 있음에도 일시금 수령, 중간정산, 사업장 파산 시 수급권 불안정, 가입대상 제한으로 유의미한 노후소득보장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렇다면 퇴직연금을 강화해 노후소득보장제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민연금 보완장치로 개편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퇴직연금 제도가 소득비례연금으로서 18~20%의 소득대체율을 제공하면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정 교수는 “장기적으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하고 퇴직연금을 중산층 근로자의 실효적 노후소득보장 수단으로 개선하면, 국민연금은 보편적인 노후소득보장의 안전망으로서 빈곤 경감 등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퇴직연금 수급률은 국민연금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며 "퇴직연금이 공적연금으로 역할을 하게 하려면 현재와 같이 퇴직연금을 시장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연금 소득비례연금으로 개편해야

국민연금공단 전경 사진=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전경 사진=국민연금공단

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낸 것에 비해 많이 받도록 설계돼 재정 안정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현행 급여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확충방안 마련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국민연금을 소득비례연금으로 개편하는 방안과 노동시장 개편을 통해 납입연령을 늘리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9%의 국민연금 보험료율로는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수 밖에 없는 만큼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도 “보험료를 갑자기 OECD 평균인 18%대로 2배 인상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자칫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어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은 “그러나 현행 9%에서인 보험료율을 13%대로 인상하는 방안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반드시 검토돼야 할 것”이라며 “아울러 고소득자의 보험료 부담을 상향하는 소득비례연금으로 국민연금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그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100세 시대에 발맞춰 노동시장을 개편해 국민연금 재정을 충당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시했다.

현재 국민연금 의무 납입 연령은 만 59세로 고정돼 있지만 현재 만 62세인 수급연령은 5년마다 1세씩 늘어나 내년엔 만 63세, 2033년에는 만 65세가 된다.

윤 연구위원은 연금 납입연령을 65세로 늘리되 정년퇴직 이후 다소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고 재고용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등 노동시장 개편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경제신문=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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